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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준일기

임신 28주 배뭉침

1. 

지금으로부터 딱 한달 전 쯤, 그러니까 8월 말에서 9월 초.

이 때에도 배가 자주 뭉치고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정기 검진이 아닌 날에 병원에 갔었다.

처음으로 태동검사를 했고, 그 당시 자궁문이 살짝 열렸고 라준이가 엉덩이로 자궁문을 누르고 있으니

몸을 많이 쓰지 말고 엥간해선 집안일도 하지말고 최대한 누워만 있으라는 말씀을 듣고 왔었다.

그렇게 정말 2주 정도를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서만 보낸 덕분인지 그 이후로 확실히 배 뭉침을 줄어들었었다. 


2. 

그 이후에도 조금씩의 배뭉침이 있긴 했지만 걱정하지 않으려 애썼다.

임신 12주 지나면서부터 흔히 말하는 임신 안정기, 즉 임신 중기에 들어가면서는 임신 초기보다 몸이 좋았다.

그러다가 지난달에 잦은 배뭉침으로 병원을 갔었고, 그렇게 좀 쉬고나니 또 괜찮아지길래 

남들 말하는 임신 중기 (임신 중에 가장 컨디션이 좋을 시기)라고 하니 나도 괜찮을거야 하는 생각 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집순이였지만 가끔 뭐 마트, 우체국, 보건소 정도 외출한 게 전부였다.


3. 

이번주에 라준이는 28주에 들어섰고, 요며칠은 확실히 몸의 변화가 더 크게 다가왔다.

하루하루 배가 조금씩 커져가는 게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외에 느껴지는 변화들이 무척 많았다. 

손이 자주 저리고 부어서 특히 자고 일어나자마자는 손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주먹도 안 쥐어졌다.

낮과 밤에도 자주 손이 불편해서 한번씩 주물주물해주고는 했었다. 원래 손발이 저릴 수 있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했다.

손이 저리거나 붓는 건 그다지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냥 좀 주물럭 주물럭 해주면 되니까.

자주 외출하지 않으니 꼭 반지를 껴야한다거나 손을 쓰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보니 크게 문제 없었다.


4. 

다만, 진짜 너무 불편해진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잠을 자는 문제였는데.

임신한 다른 사람들 얘기를 여기저기서 주워들으면서 6개월 이후부터 똑바로 누워서 자는 게 불편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우와 나는 참 축복받았다. 원래 옆으로 누운 자세로는 잠에 잘 못들고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야 잠이 오는 나였는데

다행히 나는 똑바로 천장보고 누워서도 잠을 잘 수 있으니 우리 라준이는 행운 덩어리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행운 덩어리가 아니라는 소리는 아니고... 라준이도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건 아니었다는 소리..)

확실히 지난주? 이번주부터는 잠을 자는 자세 하나하나가 전부 다 불편해졌다.

엎드려 누울 수 없는 건 이미 오래 된 얘기니까 별로 크게 신경도 안썼지만 이제야 생긴 불편함은 그 이상이었다.

천장을 보고 누우면 답답하고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고, 옆을 보고 눕자니 어깨가 눌려서 팔이 아파지고,

그러니 누운 상태에서 왼쪽으로 누웠다가, 오른쪽으로 누웠다가, 다시 하늘 보고 누웠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금방 배가 뭉쳐서 딱딱해지고는 했다. 무척 피곤한데도 누워있으면 그 자세가 편하지 않고 배가 뭉치기도 하다보니

잠도 달아나버리고 편안하게 잠들 수 없으니 좋았던 기분 마저 안 좋아지고는 했다.

누워있는 상태에서의 나는 정말 표정이 썩어가는 듯 했다. 


5. 

그렇지만, 그래 임신하고 배가 불렀으니 불편한거지. 임신을 해놓고 하나도 안 불편하고자 하는 건 욕심이지.

한 생명이 이 안에 있는데.. 심지어는 이제 대략 30cm가 훌쩍 넘은데다가 몸무게도 1kg에 육박하는데 말이다.

'몸이 편하고 가벼울리가 없지 않겠어? 엄마가 되는 과정이고, 내가 견뎌내야 하는 나만의 시간이다, 괜찮아 괜찮아.'

라고 매일 밤마다 누워서 속으로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남들도 다 하는, 다들 잘 해내는 임신 과정인데 나라고 뭐 다르겠어?

나도 똑같이 무던하게 보내면 되! 라고 생각했고, 임산부라고 유난 떨지 말자는 생각이 컸다.

임신 후 떨어댄 유난은 임신 초에 힘들어서 직장을 관둔걸로 족했다.


6. 

마음이 부족했던 걸까? 설마 내심 유난 떨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마음따로 몸따로인걸까?

나는 정말 건강으로 유난 떠는 임신 기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오늘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부터 배가 좀 아픈데 싶으면서 어지럽기도 했다. 좀 힘들었나 생각하고 말았다.

밥을 정말 맛있게 무척 많이 먹었는데, 먹으면서도 배가 아팠다. (진짜 미련한 나같은 년)

아휴 배 아파라고 했고, 신랑은 "너무 많이 먹어서?" 라고 말했다. 대답하기 어려웠다.

기분좋게 다같이 밥먹고 있었고, 실제로 정말 많이 먹기도 했던 그 상황에 내가 배가 많이 아프다고 하고싶지 않았다.

누구도 내게 눈치주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의 뭐랄까 내 스스로의 판단이었다.


7. 

식사를 마칠 때 쯤 딱히 배가 아프거나 그런 느낌은 없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한참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배가 살짝씩 아픈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좀 어지러운 게 계속 남아있었다. 왜 어지러울까, 물도 마셨고 딱히 체하거나 뭐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냥 정말 어지러웠다. 빙글빙글 약간 이런 느낌. 물론 심하진 않았으니 설거지를 마저 한거였다.

설거지 마치고 씻고서 방에 들어왔다. 침대에 올라가서 벽쪽에 베개를 두개로 등받이처럼 두껍게 만들고서 기댔다.

거의 반 누워있는 상태? 앉은 것도 아니고 누운 것도 아닌 애매하지만 편안한 자세로 노트북을 했다.

똑바로 누워있는 게 워낙 허리도 아프고 불편해진 요즘이기 때문에 자세는 생각보다 편안했다.

이러다가 잠 오면 픽 누워서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뭔가 점점 이상했다. 배가 뭉치는 간격이 예전보다 짧았다.

'유난떨지 말자, 오버하지 말자, 천천히 생각해보자.' 라고 또 속으로 몇번이나 얘기하며 배가 뭉칠 때마다 시간을 확인했다.


8. 

정확히 같은 간격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3분에서 5분 사이에 한번씩, 또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뭉치고는 했다.

확실히 그동안에 비해서 배가 뭉치는 간격이 짧은 것 같긴 했고, 좀 잦아지기는 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덜컥 행동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냥 한동안은 계속 그 간격을 쟀다. 한시간 반 정도를 꾸준히 그렇게 뭉쳤다.

이 시간에 병원에 가야하는 걸까 '임신 28주 배뭉침 간격' 등등으로 인터넷 검색을 막 했다.

한시간 반을 꾸준히 배가 뭉치다보니 나아질 것 같지 않았고 어지럼증이 저녁부터 지금까지 계속 된 것도 썩 좋지 않았으니

밤 11시가 되긴 했지만 병원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새벽에 가는 거 보다는 나을거라는 생각이었다. 

뭐 그런 생각에서도 그랬지만 5분에서 10분사이 간격으로 배가 뭉치고, 가만히 앉거나 누워있어도 어지럼증이 계속 되고,

게다가 식은땀이 급 흐르기도했다. 이마, 목 뒤, 손바닥 등등. 그때가 되니, 생각이고 나발이고 병원에 가자 싶었다.


9. 

밤 11시에 병원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해드렸다. 퉁명스럽긴 상담이었으나 밤에 일하는데 얼마나 힘들까 이해가 됐다.

"제가 지금 28주인데 한시간 반정도를 배가 꾸준히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뭉치고 있어요.

어지럽고 식은땀도 막 나서요, 혹시 병원에 가봐야 하는건가요?" 

"몇 주시라구요?"

"28주요."

"배가 뭉친다구요?"

"네. 인터넷 찾아보니 5분, 10분 간격으로 배뭉침이 계속되면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전화드렸어요."

"ㅋ.. 그건 막달에나 그런거구요."

바로 위의 저 말을 하는 간호사샘이 피식 웃었었다. 위에 내가 ㅋ.. 라고 써놓으니까 마치 옛날 인터넷소설 같은 무척이나

허접한 그런 느낌인데... 아.. 하여튼 그게 아니라.. ㅋ 이런 썩소 느낌의 웃음소리에서 뭐지 이 전화상담은? 싶었으나

내가 아파서 당장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와중에 그런거 신경 쓸 겨를은 딱히 없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얘기를 또 쓰고 있는 걸 보니, 아마 신경이 쓰이긴 쓰였나보다.

"아.. 그래요..? 그럼 안가도 되는 건가요?"

"배가 뭉칠 때 아프세요?"

아마 전화 상담을 한 간호사는 임신 경험이 없는 것 같았다. 배가 딱딱하게 뭉치면 쥐난 것 처럼 급 아픈데 말이다.

게다가 내가 그 시간에 그다지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심심해서 병원에 전화를 했을 확률은 무척 낮지 않았을까? 

"네, 배가 뭉치는 순간에는 아프죠. 풀릴 때까지 아파요."

"아, 누워서 쉬시는 게 제일 좋긴 한데, 아프신거면 병원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갈게요."

"얼마나 걸리세요?"

"30분 내로 갈게요."


10.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주섬주섬 옷을 꺼내입고 지갑이랑 산모수첩만 챙긴채로 나왔다.

아프고 힘들고 걱정되서였는지 평소보다 더 빨리 병원에 도착한 듯 했다.

오늘 퇴근 후 무척 피곤해했고 내일도 출근해야하는 신랑에게는 병원다녀온다고 말하고 혼자 나왔다.


11. 

사실 그 전에 갈등이 있어서 서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던 중에 병원에 가게 된 거였다. 

물론 같이 가자고 했을 수도 있었을거다. 나 혼자의 임신이 아니라 우리 함께하는 임신이니까.

그런데 마치 내가 '나 지금 당신과 갈등이 생겨서 스트레스 받아서 화가 나서 아파. 그래서 병원에 갈거야.' 라는 것 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싶어서 티내기 싫었다. 아무렇지 않게 혼자 다녀오고 싶었다.

별일 없을거지만 내가 조금 아플 뿐이고 조금 걱정되서 다녀오는 거니까. 병원에 가는 것 뿐이니까.

한주동안 일하면서 피곤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 밤중에 병원 가자고 하고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도 사실이고.

신랑이 "다녀올 수 있는 거야?" 라고 물어서 "다녀와야지." 라고 대답하고 바로 병원으로 출발했다.


12. 

병원 가서 20여분 정도 태동 검사를 했고, 의사샘이 오셨다.

한밤중에 배가 아프다며 병원에 찾아온 환자, 아무리 돈을 벌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의사라면 달갑지는 않을 거 같다.

그런데도 무척 상냥하게 대해주셨다.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태동검사 한 결과지도 보시고,

조기 진통이라고 하셨다. 보통 34주쯤 느끼는데 조금 빨리 느낀거라고.

뛰거나 쪼그려앉거나 오래 서있으면 안되고 스트레스 받아도 배가 뭉칠 수도 있다고 혹시 그랬느냐고 물으시는데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런 것 같기도 한 그 애매한 중간 쯤 느낌이었다.

설거지를 하거나 밥을 하거나 청소를 하는 일들이나 걸어다니는 일들이 사실 별로 막 엄청 힘들거나 그렇지는 않은데

나중에 가서야 오래 서있었나? 싶은 느낌이 올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답하기 어려웠다.

스트레스도 역시 마찬가지다. 뭐 이런 사소한걸로 스트레스 씩이나 받았겠어 싶어서 대답하기 어려웠다.


13. 

자궁 경부 길이를 재보기로 하고 질초음파를 했다. 자궁이 수축하거나 그러면 자궁 경부 길이가 짧아진다고 하셨다.

애기가 머리로 입구를 누르고 있기는 하지만 자궁 경부길이는 3.5cm였나 3.7cm였나 여튼 정상 범위니까 괜찮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이렇게 간격이 짧은 배뭉침은 처음이었어서 사실 많이 놀랐는데 다행이었다 정말.

간격적으로 배가 뭉쳤고 집에가서 새벽에 또 뭉치고 아플 수 있기 때문에 수액을 맞고 진통제도 맞고 가라고 하셨다.

원래 정기 검진일이 이틀 뒤, 내일모레 토요일 아침이라서 오늘 왔는데 내일 모레 또 와야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배 아픈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경과도 볼 수 있게 들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은 배 뭉침 때문에 자궁 경부를 확인한거지 태아를 보진 않았기 때문에, 태아 상태 확인도 해야한다구.


14. 

의사샘께 늦은 시간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서 침대에 누워서 주사 바늘을 꽂았다.

수액 맞기 전에 진통제부터 맞았는데, 진통제 들어갈 때는 좀 미식거리거나 울렁거릴 수도 있다길래 그러려니 했다.

근데 정말 미식미식 울렁울렁거렸다. 참자 참자. 진통제 주사를 다 놓고서 1시간 정도 수액을 맞으며 누워있었다.

그 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임신 9달이 참 고달프구나. 유난떨지 않고 오버하지 않고 조용히 조용히 10달 채우고싶었는데

결국에는 한밤중에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있는 내 모습이 별로였다. 괜히 서러움이 엄청 올라왔다.

11시쯤 집에서 출발해서 병원에 갔는데 집에 오는 시간은 12시 40분쯤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무리하고서 병원에서 나와, 시내 쪽에 놀고있는 젊은이들 속에서 나는 펑퍼짐한 옷을 입고 아직도 힘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겨우 주먹 쥐고 힘내서 (정말 힘을 짜내서)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게 낯설었다.

예를들면 어떤 그림을 하나 봤는데 그림 속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만이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그런 기분.

캄캄한 밤길을 걸으며 이 밤중에 내가 원주에서 커진 배를 붙잡고 혼자 뭐하고 걷고 있는건가 싶고.

왜이렇게 자주 아픈걸까 건강했으면 좋겠다. 별로 뭐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몸이 힘든게 정말 꼴뵈기 싫었다.


15. 

울컥울컥하며 집까지 와서는 침대에 누워서 결국 눈물이 났다. 막 서러웠다.

어떤 감정이든 간에 일단 감정은 잠시 뒤로하고, 지친 하루였으니 잠을 자야지, 그래야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한참 누워서 있는데 역시나 어떤 자세로 누워도 몸은 불편하고 힘들고 아팠다.

집에 왔을 때가 1시 조금 안되었을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한시간을 넘게 누워있다가 도저히 불편하고 힘든 상태가 계속되니

기분까지 점점 안 좋아지길래 계속 그러고 누워있기 싫어서 일어나 앉았다. 벽에 베개를 대놓고 누운것도 앉은것도 아닌채.

결국 지금 4시가 지나가고 있는 이 시점까지 이러고있다. 푹 자고싶다. 누우면 픽 쓰러져서 잠들어버리고 싶다.

새벽에 깨지 않고 깊이 자고싶다. 자고 일어났을 때 몸이 개운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몇달간 못 누릴 행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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