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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준일기

임신 후기 마음

1. 

그저께 금요일에 라준이 병원에 다녀왔다.

라준이 머리는 아래쪽에 있고 내 왼쪽 배쪽에 엉덩이를 두고, 내 오른쪽 배 쪽에는 다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태동이 오른쪽에서 느껴지는 거라고. 정말 많이 컸구나 우리 라준이.

몸무게는 1.3kg으로 드디어 1키로가 넘었다. 내 배 속에 1키로가 넘는 뭔가가 있다니.

나는 딱히 크게 신경도 못쓰고 있는데 녀석은 내 안에서 스스로 잘 크고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하고 미안하다.

1키로가 넘기 전에만해도 뭐 있긴 한걸까 무게는 잘 모르겠네 그냥 배가 나오는구나 정도로만 느껴졌는데

요즘은 정말 아주아주 많이 무거워졌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움직일 때마다 배가 뭉치기도 한다.

특별히 집안일을 하거나 하지 않고 조금 걷기만 하는 정도에도 배가 꽝꽝 얼어버리고는 한다.


2. 

이제는 28주로, 임신 후기로 들어간 거라고 한다.

이제 진짜 더 힘들거라는 의사선생님 말이 있었고 정말로 많이 힘들다.

남들도 다들 이렇게 힘들게 아가를 품는걸까 산모들이 참 대단해보이고 우리 엄마가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워낙에 약한 저질체력인데, 엄살쟁이인건지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힘든게 너무 괴롭다.

가만히 있는데도 어지럽기도 하고, 허리는 계속 끊어질 것 처럼 아픈데다가

배가 쿵쿵 거려서 불편하고, 태동이 많아지고 세져서 아프기까지 하다.

낮에는 물론 밤에까지 다리가 많이 저리고 아파서 자다가도 새벽에 깨서 다리를 주무르고는 한다.

어떤 자세로 잠을 자도 편하지가 않아서 푹 자본 기억이 잘 안나는 것만 같다.

밤이면 픽 쓰러져서 아침까지 한번도 깨지않고 꿀잠을 자봤으면 좋겠다.

좀 자다보면 새벽 4시나 5시면 몸의 불편함에 깨고는 하는게 이게 엥간히 힘든 일이다.

가장 큰 욕구인 수면욕을 채워주지 못하니 점점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

손가락은 하루종일 부어있어서 아프다. 너무 땡땡 부어있으니 아픈걸까. 앉아서 쉴 때마다 다리와 손을 주무른다.

어제도 새벽에 자다가 다리가 저려서 깼다. 일어나 앉아서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데 그게 또 서러웠다.

잠결에 다리를 주무르는데 눈물이 막 났다. 이게 뭐라고, 다리 저린게 뭐라고, 그럴 수도 있지 싶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런 지치고 힘든 것들이 매일매일 매순간 하루종일 반복되다보니 그게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3. 

요 며칠은 눈물이 많아졌다. 몸의 힘듦이 정말 신기하게도 매일매일 최고조에 다다르며 신기록을 찍고있다.

자기 전에도 울고, 자다가 깨서도 울고, 낮에 멍하니 있다가도 울고, 조금씩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는 것 같다.

왜 우느냐면 나도 잘 모르겠는데.. 힘들고 서러운 라연, 그리고 라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4. 

매일 반복되는 힘든 몸에 너무 지쳐서 임신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도 예쁘게 하고 다니고 싶고, 일도 하고싶고, 놀고 싶은 그런 마음은 둘째로 할 수 있다. 별거 아니니까.

그런데 무슨 옷을 입어도 불편하다보니 집 밖으로 나가는게 너무 큰 부담이 된 것도 싫다.

집 밖에 나가게 되면 아주 짧은 시간만 나가있고 얼른 집에 들어가서 편하고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고 누워있고 싶다.

가슴이 많이 커져서 무거워졌는데 가슴 아랫 부분이 배의 맨 윗부분 살과 닿는게 그게 진짜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다른 데는 괜찮아도 그 부분에만 자꾸 땀이 몽글몽글 맺히고, 늘 찝찝하고 무겁고 불편하다.

배까지 올라오는 임부복을 입어도 배가 워낙 커지고있다보니 배가 쫄려서 찡기고 아프다. 

사실 남들이 보기엔 정말 사소한 거일 수도 있다. 옷 그까짓거 때문에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찡찡거리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게 그렇지가 않다. 가슴, 배, 허리, 다리, 손, 발까지 온 몸이 편치가 않은데 옷까지 불편하니까.

그 시간이 길어질 수록 나는 점점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이 되는 것 같다.


5. 

내 몸 하나 간수하는 일이, 별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이는 사소한 것들이 이렇게 힘든 일상이 될 줄이야 싶다.

그렇다보니 스트레스 받고있는 내 모습이 느껴지면서 임신하기 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산모들, 또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너무한다고 나쁜 년이라고, 모성애가 없느냐고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무를 수 있다면 무르고 싶었다. 관둘 수 있다면 관두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버리는 내가 밉다. 그래서 라준이에게 미안하다. 그런 마음이 겹쳐지면 왈칵 눈물이 난다.


6. 

잔인한 소리겠지만 임신 초기에 나는 라준이를 지킬지 그때의 삶을 지킬지 선택할 수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또 그게 어떻게 선택의 문제냐. 나쁜년이다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잖아.

그런데 나는 그 때 정말 강렬하게 라준이를 지켜내고자 했다. '지켜야겠어!' 이런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본능적인 그런 거였다. 그 때는 그게 모성애인걸까. 이런게 본능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 뱃속에 아주 작아서 아직은 느껴지지 않던 이 아이를 지켜야했다. 그게 내 몫이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면 정말 내 스스로가 더 많이 무너질 것 같다. 라준이에게도 너무 미안할거고.

임신, 라준이를 지킨 이후에 내 삶의 많이 것들이 달라졌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늘 입밖으로 얘기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마음도 있었던걸까. 요즘 너무 힘들어지니까 사실 조금은 후회하는 것 같기도 하다.

후회라는 단어가 맞을지는 모르겠는게, 사실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아마 난 라준이를 또 지켜낼거다.

그건 내가 고민과 선택, 결정 뭐 그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어떤 것이었으니까.

아마 나는 또다시 라준이를 지켜낼 선택으로 결정할 거라는 걸 알고있다. 그렇기에 이걸 후회라고 보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한다. 그 크기가 다를 뿐이다. 살다보면 매순간이 선택과 결정이다.

라면을 먹을까 우동을 먹을까 해서 라면을 먹으면 아, 우동 먹을걸 하고 후회한다. 이건 아쉬움이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아쉬움은 늘 남고는 한다. 그나마 그 아쉬움의 크기를 줄이려는 선택을 하는게 현명한거이지 않을까.

그래서 난 라준이를 품고있는 지금은 그떄를 회상하고 그리워하며 아쉬움이 담긴 후회 아닌 후회를 하긴 하지만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때 라준이를 지켜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살면서 내내 후회하고 아파했을지도 모르겠다.



7. 

이제 임신 후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태교를 열심히 해줘야한다고 하는데, 나는 나쁜 엄마라 태교도 못하고 있다.

미안하게도 엄마 몸 하나 간수하기도, 몸 뿐만 아니라 자꾸 무너지는 마음을 잡아내기 조차 너무 벅차서

라준이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주고 있다. 그게 정말로 많이 너무 많이 미안하고 죄스럽다.

모성애라, 내가 모성애가 없는걸까 고민도 많이 든다.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임신 했다고해서 모든 여성에게 갑자기 모성애라는게 생기는 건 아니라고.

심지어는 출산 하고 나서도 바로 모성애가 생기고 뭐 그런게 아니라고.

모성애, 엄마의 사랑, 그건 다 살면서 커져가는 게 아닐까. 시간이 축적하는 어떤 거대한 게 아닐까?

연애를 해도 그럴 수 있잖아. 처음엔 그냥 와 이런게 연애구나 싶다가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깊은 사랑에 빠지기도 하니까.


8. 

임신이라는 게, 내 뱃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고 있는 일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나는 화분이고, 내 입은 잎파리고, 내 속은 흙이고, 그 안에 작은 씨앗이 라준이라고 할 수 있겠지.

뭔가가 내 안에서 자라나고 커가고 있다는 건 무척 신비롭고 아름답고 멋진 일임에 분명하다.

또한 그만큼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도 이론적으로 알고있다. 머리로는 이해한다는 뜻.

임신 기간이 어찌 편하겠어, 어찌 쉽겠어. 그거 안다. 나도 다 안다고. 얼마나 힘든일인지 당연히 힘든거라는거 안다.

다만 그걸 감당해내고 견뎌내는 게 이론과는 다른 문제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신랑과 함께 살고 함께 지내고 옆에 있지만서도 결국 내 몸의 변화와 내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는 건 나 자신이다.

그게 너무 힘들다. 내가 감당해야하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따라오지 않는 거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하는데 그게 잘 안되서, 나는 나대로, 라준이는 라준이대로 그런 시간이었다.

임신 후기로 들어가면서 라준에게 점점 더 집중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

몸이 힘들고 아프니, 마음도 점점 안좋았고, 그러다보니 계속 그 안에서 허우적댔다.

마음을 다잡고 라준이에게 조금 더 신경쓰고 집중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내 몸이랑 마음부터 잘 추스릴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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