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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준일기

29주 라준이에게 쓰는 편지

상준 라연의 첫 아들, 라준이에게.


라준아 너는 오늘로 엄마 뱃속에서의 29주째가 되었어.

다음주면 벌써 앞자리가 3으로 바뀔만큼 많은 시간이 지났단다.

계획없이 넋놓고 있던 엄마에게 네가 찾아온게 4월이었는데 어느덧 10월이 되었어.

7개월 동안 너는 1키로가 넘었고 머리카락도 자랐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한 준비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엄마가 병원에 가서 꼼꼼히 살펴보고 있긴 한데 그래도 혹여나 어디 아프진 않은걸까 걱정이 된다.

네가 아프거나 하면 엄마가 느낄 수 있게, 알아차릴 수 있게 신호를 주렴. 

너는 엄마 아들로 태어날 준비를 잘 하고 있는데, 엄마는 좋은 엄마가 될 준비가 아직 안 된 것 같아.

남은 두달의 시간동안 엄마도 많이 공부하고 배우면서, 그리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라준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할게.


라준아, 엄마랑 아빠는 요즘 네가 가까이 있는 게 느껴져. 

예전과 다르게 무척 세진 너의 발길질에 엄마는 욱욱 아프기도 하단다. 

그렇다고 살살 차라는 얘기는 아니야. 그건 엄마가 잘 감당해낼 문제니까 우리 라준이는 엄마 뱃속에서 신나게 놀아.

처음 라준이의 뽈록! 태동을 느꼈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달이 지나서 이젠 태동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구나.

아직 우리 라준이는 엄마 뱃속에 있지만 요즘은 바로 옆에 같이 있는 기분이야. 둘이 아니라 셋이 있는 기분이란다.

엄마는 요즘 잠을 잘 못자. 라준이가 커져서 엄마 배가 많이 무거워졌거든.

그래서인지 누워도 편하지가 않아서 허리가 많이 아프단다.

엄마의 행복한 잠 시간을 괴롭히는 게 다른 사람이었으면 엄마가 무척 화도 났을텐데

우리 아가가 잘 자라느냐고 그런거니까 엄마가 더 잘 참고 견뎌낼게.

엄마가 더 힘들어진만큼 우리 라준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거여야만해. 알겠지?


라준이는 아침과 밤으로 태동이 심하단다. 

밤에는 누워있으면 가끔 딸국질도 해서 뽈록뽈록뽈록뽈록 계속되기도 해.

아침에는 엄마가 허리가 아파서 잠에서 깰 때쯤, 네가 배를 무척 세게 계속 찬단다.

"엄마 일어나! 밥 먹자!" 하는 것 같아서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

태동을 느낀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요상스러운지 몰라. 뱃속에 외계생물체가 있는 것만 같아.

가끔은 이 멋진 신비를 아빠도 느껴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아빠도 배로 라준이의 태동을 직접 느끼면 아빠도 엄마처럼 라준이가 더 가깝게 느껴질텐데, 그렇지?

아마 네 아빠도, 너도 영원히 못 느끼겠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가 혼자 잘 느낄게.

네 아빠는 안 믿지만 엄마가 누워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 너는 뽈록 뽈록 엄마 배를 건드리곤 해.

엄마가 태교라고 클래식 음악이나 뭐 이런걸 듣지도 않고 좋은 것만 보거나 듣지도 않아서 서운한지 모르겠어.

그래도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너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말도 걸고 하지 않니? 그런대로 이해하렴..


라준아, 라준이는 외할머니가 안 계셔. 외할머니는 너무 멋진 분이셔서 하느님이 일찍 데려가셨거든.

하느님은 더 착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더 일찍 데려가셔. 하느님 곁에 두시고싶으신가봐.

너에게 외할머니는 안계시지만 하늘에서 우리 라준이 많이 도와주고 계실거야.

그리고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큰아빠도 계셔. 우리 라준이를 엄청 예뻐해주실거란다.

라준아, 엄마의 엄마 아빠, 그리고 아빠의 엄마 아빠는 무척 중요한 사람들이야.

그 분들이 안계셨다면 엄마도 아빠도 없단다. 그 분들 덕분에 라준이 네가 태어날 수 있는거야.

그러니까 엄마는 우리 라준이가 가족들에게 잘 하고, 예쁨 받을 수 있는 그런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라준이는 12월 16일쯤 태어날 예정인데, 엄마는 네가 언제 나와도 좋아.

네가 마음이 내킬 때 엄마 옆으로 오면 좋겠어. 다만, 너무 일찍 나오면 네가 아플 수도 있거든. 

라준이 네가 아프면 엄마는 마음이 찢어지게 아플거야. 그런 엄마를 보는 아빠 마음도 많이 힘드실거야.

우리 라준이 태어나면서부터 엄마 아빠 많이 슬프게 하지는 않을거지? 

네가 언제 나와도 좋지만 12월쯤이면 좋겠어. 네가 아프지 않고 세상을 견딜 자신이 생기면 그때 당당히 나오렴.

엄마는 라준이가 12월에 태어나서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

물론 엄마는 너를 낳으면서 지친 엄마 몸을 챙기느냐고, 갓난쟁이인 너를 신경쓰느냐고

크리스마스를 즐기진 못하겠지만 같이 성탄절을 맞이하는 것 만으로도 무척 기쁠거야.

엄마랑 아빠는 매년 성탄절에 성당에 가서 성탄전야 미사를 드리고는 했어.

올해는 아마 성탄전야 미사를 드리러 가기는 어렵겠지만 마음으로 기도드리기로 하자.


엄마랑 아빠는 요즘 라준이의 이름을 고민했단다. 아빠 성이 '이'씨니까 라준이도 '이'씨가 되는거야.

그리고 예부터 내려오는 돌림자라는 게 있어. 뭐 이걸 네가 이해하려면 한참 걸릴테니 대충 들어.

하여튼 너의 돌림자는 가운데 '재'가 들어간단다. 그래서 '이재○'이 될거야.

이재강, 이재유, 이재연 등등 많은 이름들을 고민중이야. 흔하지 않되 멋진 이름으로 잘 고민해볼게.

혹시 네가 특히 마음에 드는 이름이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엄마에게 신호를 줘봐. 잘 캐치해볼게.


우리 라준이는 성격이 급한건지 일찍 나오고 싶은건지 자꾸 아파서 엄마가 무척 힘들었어.

조금 더 아무렇지 않게 엄마 뱃속에서 여유부려도 되니까 서두르지마.

그리고 사실 엄마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완전히 되진 않았단다. 네가 너무 일찍 나오면 너도 나도 힘들거야.

다른 사람들도 다들 9달 10달 있다가 나오니까, 우리 라준이도 그 시간 다 보내고 나오자.

너무 늦게 나오라는 소리는 아니야. 적당히 라준이가 세상에 나와도 아프지 않을 순간에 나오는 걸로 하자.

네가 너무 오래 있으면 또 엄마랑 아빠는 네가 너무 보고싶어서 초조할테니까.


너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데 엄마는 왜이렇게 몸이 힘드냐.

조금만 무리하면 바로 건강이 삐용삐용 해서 엄마는 임신 기간 내내 골골대고 있단다.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엄마가 체력도 많이 약하고, 체질상 그런거야. 너는 걱정할 거 없어.

엄마가 좀 아프고 힘들긴 한데, 너는 건강하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태교한답시고 유난떨거나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무던하게 너는 너대로 잘 자라고 있겠지, 나는 나대로 건강 신경쓰기 바쁜 임신 기간을 보내는 편이야.

그렇지만서도 병원가서 네가 건강한지 확인할 때마다 조마조마하더라. 

건강해요, 이상없어요 라는 그 소리에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몰라.

엄마가 별로 신경쓰지도 못했는데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너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대견스럽단다.

남은 두달정도의 시간도 아프지 말고, 너도 나도 힘들지말고 그렇게 시간을 잘 보내다가 만나자 우리.


라준아, 엄마랑 아빠는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을 무척 좋아해.

나중에 라준이 태어나고 같이 누워서 빗소리 들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엄마는 벌써 설렌다.

엄마도 어릴적에 엄마의 엄마랑 누워서 빗소리 듣던 기억이 나거든. 너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비 오는 날에는 부침개에 막걸리가 최고란다. 엄마가 술을 마시면 네가 해독을 하지 못하고 취한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엄마는 술을 마실 수는 없어. 네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나면 그때는 참아왔던 술을 좀 마실거야.

그정도는 네가 이해해줬으면해. 네가 있듯이 나도 있는거야. 엄마는 네 엄마이기 이전에 20대 청춘이란다.

오늘은 아빠가 퇴근하고 오셔서 김치부침개를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셨어. 엄마가 맛있게 먹을테니 너도 즐겨보렴.

그리고 몇년이 지나서 라준이도 사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 다같이 부침개 찢어먹자.


아마 라준이 네가 태어날 때쯤엔 눈이 오지 않을까 싶어. 너는 많이 추운 겨울에 세상에 나올 예정이거든.

태어나 첫 겨울을 네가 몸으로 직접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엄마가 잘 전달해줘볼게.

그리고 그 다음 겨울에는 라준이랑 엄마랑 아빠랑 다같이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도 구경하고, 만져도 보고 그러자.

몇년이 더 지나면 그때는 우리 가족 다같이 눈사람도 만들어보자. 재밌겠지? 

엄마는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라준이가 태어날 12월이 기대가 되는구나.


엄마에게 찾아온 첫 생명, 첫 선물 라준아. 네가 있어 참 행복해.

너도 곧 알겠지만 살다보면 우리가 힘든 순간도 있을거야. 그래도 아빠랑 엄마랑 너랑 우린 한 팀이야. 

그리고 우린 무척 강력한 팀이라서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어.

엄마는 아빠랑 너랑 우리가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현명한 사람이 되고자 항상 노력할거야.

아마 아빠도 우리가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늘 애쓰고 계실거고.

그러니 라준이는 엄마 아빠 믿고 잘 자라기만 하자.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는 라준이이기를 기도할게.

남은 기간도 함께 잘 보내고, 12월에 기쁘게 엄마 아빠 품에 안기자. 사랑해 우리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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