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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준일기

37주

1.

오늘로 라준이는 37주 막바지인 나날들을 보내고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 정말 얼마 안남았구나. 그게 막 느껴진다. 알 수 있다.

라준이가 뱃 속에서 간 보고 있는 느낌? 나만 알 수 있는 그런 느낌이있다. 

이십몇주, 그니까 임신 중기에 조산기가 있어서 누워서 쉬기만 해야하는 그런 시기들이 있었다.

그 때 생각하면 우리 라준이가 그 시기들을 참 잘 보내줬구나 싶어서 더없이 고맙고 좋다.

11월 내내 신랑은 배에 대고 "라준아 우리 다음달에 만나자~" 라는 태담을 엄청 해주고는 했는데

그렇게 정말 12월이 되었다. 이번달은 라준펜션에 입이 하나 더 늘어난다. 정말이다.


2.

지난 주 토요일은 병원 정기 검진 날이었다. 걱정했던 병원 가는 날.

왜냐하면 2주 전, 검진 할 때에는 양수가 너무 적고 라준이가 잘 안크려고 하다보니

12월 초에 유도분만을 하자는 식으로 말씀하셨고, 2주간 고민해보시라고 하셨었기 때문이다.

2주 동안 라준이 몸무게도, 키도 많이 컸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양수까지 늘었다면 더 좋겠다는 바람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고

진료 전에 몸무게를 쟀는데 2주 동안 내 몸무게가 3키로나 쪄있었다. 오! 라준이가 많이 큰걸까 기대했다.

초음파를 보니 라준이는 2주동안 300g 쪘다. 내가 3키로 찌는 동안 우리 라준이는 300그램... 

라준이는 한 주수 정도 작은 편으로 2.7kg 라고 했다. 그래도 참 고맙다. 

임신 중기에 조산기 있을 때 생각하면 2키로 넘어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12월 될때까지 커준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의사선생님도 2.7키로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사 맞지 않아도 되니 몸무게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더 좋은 소식은! 양수가 여전히 적은 편이긴 하지만 유도분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는 거!!!

자연 진통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예!!!! 유도 실패율이 워낙 높다고 하니 제왕절개 하기 싫은 마음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게다가 최대한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라준이를 만나고 싶었는데 유도 주사를 맞기 싫어서 어찌나 마음 쓰였는지..

앞으로는 일주일 간격으로 병원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하셨고, 다음주 진료는 38주로 그 때에는 내진을 할거라고 하셨다.

내진... 아프다고 들었습니다만은...ㅠㅠ 흐엉... 무서워요!!! 


3.

일단은 자연 진통을 기다려볼 수 있음에 행복하다! 알게모르게 스스로 압박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은 '자연진통이 제일 좋다. 의사들이 자기들 편하자고 수술 하자고 하는거다.' 라고 생각하시기 쉬워서

더욱 내 스스로 압박 아닌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며칠 전에 깨달았다. 

주변 누구도 자연분만 못하면 안된다고 소리지르지도 않았고 자연분만 못하면 실패야! 라는 식으로 얘기한 사람 아무도 없지만

알게 모르게 은근히 "자연분만 해야지~" 라는 소리들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조산원까지는 안 들어갔지만 나 역시도 최대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라준이와 첫만남을 하고싶었고,

누구보다 내 스스로가 가장 자연분만 하고 싶어서 처음 유도 얘기 들었을 때 무척 속상해했었고 기죽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라준이에게 미안했다. 내가 자연분만 하고싶다고 스트레스 받고있는 게 더 나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분만이든, 유도분만이든, 제왕절개든, 나는 전문가(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내 스스로 어떤 뭔가에 압박 받으면서 스트레스 주면 오히려 그게 더 라준이에게 나쁠 것 같다는 생각.

자연분만, 모유수유. 여전히 꼭 하고 싶긴하다. 그치만 못 한다고 해서 기죽을 거 하나도 없다.

그저 라준이가 어떤 방법이든 건강하게 내 곁에 와주기만 했으면 좋겠다. 모유든 분유든 잘 먹어만 주면 좋겠다.

일단은 자연진통을 기다려보기로 했지만, 양수가 적기 때문에 진통이 왔을 때 탯줄이 눌리거나 그러면

아기 심박수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물론 자연 진통에 자연 분만까지 할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급하게 수술을 하게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라준이가 편안하게 안전하게 잘 나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어떤 방법이나 상황들에 흔들리거나 마음 쓰지 않고, 그냥 라준이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마음 먹었지만 솔직히 주변에서 한마디 한마디 들을 때 마다 많이 흔들리고 휘청거린다.

그러니 제발 주변에서 자연분만과 모유수유에 대해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자연분만이랑 모유수유가 좋다는 건 나도 잘 안다. 아쉬워도 내가 제일 아쉽고 속상하니까 제발 그만~!

사실 이젠 더 들으면 괜히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다. 혹시나 내가 급하게 수술을 하게 되더라도

"자연 분만 했으면 더 좋았을 걸." 이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쩐지 너무 미울 것만 같다...ㅠㅠ


4.

가진통이 좀 있느냐는 말에 거의 매일 가진통은 있는데 참을 만 하다, 규칙적으로 아프면 그 때 오겠다고 했더니

이젠 진통이 와야하는 시기다. 얼른 진통이 와서 아이를 낳아도 되는 시기라고 하셨다.

임신이란 게 참 신기한게, 불과 지난주까지만해도 배 아픈건 가진통이니 쉬시면 됩니다 했는데

바로 이번주부터는 열심히 운동해서 진통이 오게 해야 한다니. 이제는 얼른 라준이를 만나고 싶고 열심히 운동하고있다.

조산기 때문에 임신 후기가 되기 까지는 전혀 운동도 못했기에 요즘은 하루에 못해도 30분 이상씩은 걸으려고 한다.

날씨가 워낙 추워서 꼼짝도 하기 싫어서 매일 엄청 고민하다가 나가고는 한다. 

남들은 2시간씩도 걷고는 한다는데 집 주변에 걸을 곳이 마땅치가 않다...ㅠㅠ

이제 언제 라준이가 나와도 괜찮을 수 있도록 집안 정리도 최대한 깨끗하게 해놓으려 한다.

내가 갑자기 병원에 가게 되더라도 집이 깨끗할 수 있도록. 라준이가 이 집에 올 때 준비가 어느정도 되어있을 수 있도록.


5.

며칠 전에 아빠랑 통화를 하면서 엄청나게 울었었다. 

우선 우리 아부지, 내가 유도 분만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엄청 걱정하고 계셨었다.

아빠가 뭘 준비해주면 좋겠냐, 아빠가 병원 가면서 빈 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냐, 뭘 해야하냐고 물으셨다.

정말로 나는 솔직히 양가 부모님께 어떤 것도 받고 싶지 않다.

우리 애긴데 양가 부모님께서 뭘 해주셔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맘들 커뮤니티 카페 보면 보통 출산시에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병원 출산비용이나 조리원 비용을 받는다고 봤다.

물론 손주가 반가운 마음에 고생했다고 도와주시거나 선물해주실 수 있는 거지만

꼭 그래야만 한다거나 그런 의무가 있는 건 전혀 아닌데 요즘 사람들 좀 이상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번에 애기 낳았는데 양가에서 아무것도 못 받았음. 헐!" 뭐 이런 글들이 올라오는 걸 보니, 참 한심하기 짝이없다.

우리 같은 경우엔 우리가 양쪽 부모님께 용돈 드려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받고 있으니 사실 염치 없기까지 하다.


6.

아빠랑 통화를 하다가 아빠가 "에휴 너 때문에 걱정 되 죽겠다." 라고 깊은 한숨을 쉬셨고 왜 그러냐 물으니

내 새끼가 이제 곧 애를 낳는다는데 걱정이 되지 않되겠냐고 하셨고, 그 때부터 울컥했다.

그리고 이어서는 폭풍 눈물을 흘리게 하셨는데.. 너네가 준비해놓은 돈이 모자라더라도 병원에서 의사가 하라는대로 하라고,

돈 걱정되서 이거 안한다 저거 안한다 하지말고 너랑 애기 위한 걸로는 최대한 좋은 걸로 다 하라고.

빚을 내서라도 그렇게 하는 게 맞는거라고. 수술을 하든 주사를 맞든 조리를 하든 뭐에 있어서든 다 잘 하라고.

아빠는 아직 손주보다 니가 더 중요하니까 무조건 네가 잘 낳고 잘 치료하고 쉴 수 있게 하라고.

아빠가 이렇게 얘기 안하면 돈 아낀다고 이것 저것 안할까봐 걱정이라고 하시는데

울컥해서 눈물이 막 나오고 목이 메여서 겨우겨우 대답을 하고 끊었다. 근데 내가 더 울컥한 건,

아빠가 저 말씀을 하실 때에 수화기 너머로 아빠도 나처럼 눈물 참아가며 목이 메이는 소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7.

알고있다. 아빠한테는 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거. 아빠한테는 내가 아직 애긴데 내가 곧 애를 낳는다니 걱정되시는 거.

다 알면서도 아빠 입으로 저 말을 들으니 괜히 울컥했나보다. 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마음이 참 뒤숭숭했나보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요즘들어 엄마 생각도 아빠 생각도 많이 나고 있던 찰나라서 더욱 울컥했는지도.

사실 돈 걱정하고 있던 게 맞다. 제왕절개 하게 되면 병원비도 더 들텐데 싶었고,

조리원 들어가는 것도 괜히 너무 돈 아까웠고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정부 지원 못 받을 것 같은데

사설 업체 이용하자니 그 돈도 너무 비싸고 해서 도움 받는 주수를 줄일까 하며 고민하고 있던 요즘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내 마음을 아빠한테 들킨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응, 아팠다는 말이 적절하다.

돈을 좀 많이 모아둘 걸 싶었고, 아빠도 사정이 어려우니 도와주지 못하시는 거 속상해하는 게 보였다.


8.

아빠랑 전화를 끊고 한참을 소리내서 엉엉 울다가 코 풀고 또 울다가 또 울었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

마음이 참 뒤숭숭하고 이상하다. 으! 이걸 쓰는 지금 또 울컥했다.

난 아직도 아빠한테 징징거리고 칭얼거리고 애기처럼 굴면 울 아빠는 내게 여전히 슈퍼맨같은데

이젠 내가 다른 한 사람의 엄마가 되고, 나 역시도 그 아이에게 슈퍼맨 같은 존재가 되야 한다는 게.

내가 진짜 엄마가 되는구나. 나도 우리 엄마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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