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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들

준비

나의 나날들.


1. 

백수가 되었다. 아직 어색하고 뭐부터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신나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일단은 늦잠자는 매일매일이 참 행복하다. 그래, 자는게 이렇게 큰 기쁨이었지. 캬!!


2. 

그동안 일하느냐고 바쁘다는 핑계로 사람들을 많이 못만났는데, 이제는 결혼준비로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하지만 핑계가 아니라 실제로 바쁘다 왜 바쁜지 모르겠지만 바쁘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3. 주변 사람들 하나하나 찾아가서 인사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좋지 않은데, 짧은 하루하루도 나의 저질 체력도 속상!

이와중에 우편으로 청첩장을 보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주변사람들이 참 고맙다. 


4. 

결혼 준비는 생각보다 정신없고 바쁘다. 나는 소박하게 그냥 대충 후딱 하고싶은데, 왜 그게 안되는지..?

하나하나 내 손으로 직접 준비하고, 발품파는 이 시간이 제법 즐겁다. 물론 항상 좋은 건 아니라서 우는 날도 많다.


5. 

소박하게 소소하게 준비하고 있다. 그러고 싶다. 결혼식이라고 유난떨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 제일 크다.

그냥 나와 그 사람이 만나서 둘이 잘 산다고 생각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만은 아닌가보다.


6. 

세상에 당연한 건 없는데, 결혼 준비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당연한거, 원래 그런 것들이 많은가보다.

원래 남자가 집을 해야 하는거야. 그건 당연한거야. 남자가 집을 하고, 여자가 혼수 하는거야. 원래 다~ 그런거야.

이런 사회적 통념? 편견?에 너무 지친다. 울고불고 스트레스 받는 날도 무척 많다.


7. 

이런 순간이 오면 난 내가 어설프긴 해도 페미니스트가 맞긴 하구나 하고 깨닫고는 한다.

도대체 왜 집을 남자가 해야해? 도대체 왜 혼수를 여자가 해야해? 둘이 똑같이 하면 안되는 건가?

돈을 똑같이 모아서 그 돈으로 같이 집도 구하고, 가전과 가구 등등 혼수도 같이 마련하면 참 좋을텐데!

원래 그런 게 어디있어? 세상에 당연한게 어디있어? 누구한테 화를 내야하는건지 알 수 없지만 화가 난다.


8. 

인생 선배들이랄까 결혼과 육아 선배들의 조언?도 많이 듣고 있는데, 그게 참 어렵다.

"다들 그래. 내가 해봐서 아는데, 너도 당연히 그렇게 된다? 이제 니 삶의 중심은 니가 아니라 애가 되는거야~"

뭐, 이런... 이야기들을 정말 너무너무 많이 듣고 있는데, 그만 듣고 싶다. 정말 진심으로 그만 듣고 싶다.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씀들을 해주시는 건지는 알겠다. 날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거 알아.

그렇지만, 그럼 나를 그냥 내버려둬줘. 그냥 내가 알아서 견뎌내보게, 직접 부딪혀보게 냅둬주면 좋겠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정말 힘든 순간이 왔을 때, 그때 옆에서 위로해주고 응원해주고 다독여주면 그거면 좋겠다.


9. 

나는 나니까 나로 살아가고 싶다.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많은 것들이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내 의지대로 그렇게 살고싶다.

고집스럽고 판타지스럽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나라고 그냥 내 맘대로 살겠다고.


10. 

지금 아직은 실감이 안나고 뭐가 뭔지 와닿지도 않지만 그래도 아 맞다 나 그렇지! 하면서 현실을 붙잡는다.

앞으로도 살다보면 사는 게 쉽지 않아 가끔, 혹은 자주 힘들기도 할 것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결국 그것조차도 나일거라는 걸 잘 알고있다. 


11.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도 내가 나라는 기본적인 건 변하지 않도록 항상 꾸준히 나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내라는 이름에, 엄마라는 이름에 원래 내 이름을 까먹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반짝반짝 빛나는 나였으면..


12. 

015B의 '잠시 길을 잃다' 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나도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길을 잃었다가도 또 내 길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내 길이라는 게 어디있겠냐 싶긴 하다.

길을 모를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고, 길이 없을 수도 있지. 그럼 그때 그때마다 맞춰서 잘 살고싶다.


13. 

느리게 세상을 바라보고, 소소한데서 행복을 느끼며, 은은하게 반짝이는 사람으로 살고싶다.

무엇보다 그냥 계속 내가 나였으면 좋겠다. 힘들고 무너져도 그렇게 그저 그렇게 나였으면..


14. 

사실 겁이 많이 난다. 아내가 되는 것도, 엄마가 되는 것도 겁이 난다. 잘 할 수 있을까. 자신 없기도 하다.

다만, 조금 더 풍부한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아직 경험해본 적 없는 아내로의 내 모습, 엄마로의 내 모습.

이 시간들을 통해 조금 더 풍부하고 깊이있는 내가 되지는 않을까 기대해본다.


15.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족과 친척이라는 부분, 경제적인 부분, 지역적인 부분 등등

정말 고민할 것도 많고 신경쓸 것도 많아서 웃는 날 보다는 우는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16. 

오늘은 원주에 집을 알아봤는데 쉽지가 않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무척 많았다.

어마무시한 태양 아래에 이 동네 저 동네 발품 파는 내 모습이 조금 처량해보이기도 했다.

돈 좀 많이 벌어서 모아둘 것을 그랬다! 너무 지친 하루의 끝에 그냥 맥주한잔 하고 잠들면 참 좋을텐데

라준 땜시롱 맥주 한잔도 어려우니, 난 이제 뭘로 이 기분을 달래면 좋을까 싶다.


17.

결혼'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부부'라는 의미가 더 중요할 수 있도록, 허례허식이 아니라 '관계'가 더 중요할 수 있도록

그렇게 소박하고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예쁜 삶을 살 수 있는 내가 되기를. 


18.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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