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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들

22주 나날들

1. 

결혼식 후기도 쓰고싶고, 제주 신혼여행 후기도 딱 1일차 까지밖에 못써서 얼른 쓰고싶다.

근데 오늘은 그냥 다른 것들을 끄적이고 싶다. 사실 어제 새벽부터 그냥 괜스레 끄적이고 싶었다.


2. 

그동안 많은 친구들이 라준펜션에 다녀갔다. 심심한 원주에 들러주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와줘서 고마워!" 라는 말이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내 진심이라는 것을! 

물론 신랑과 둘이 오손도손, 배에 있는 라준이랑 오손도손 지내는 나날들이 제법 괜찮지만

가끔은 시끌벅적 깔깔 거리는 공간이 되는 것은 너무나 훌륭하다. 물론 매번 상 차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집들이가 뭐 별거냐 그냥 한번 놀러와 라는 생각으로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예쁜 식사를 준비했다.

방문해주는 친구들은 라준이를 위한 선물을 하나 둘 바리바리 싸들고 와주었다. 정말 고맙게도!!

12월에 태어날 라준이는 아직 모르겠지만, 너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토록 축복받고 사랑받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너의 탄생을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하며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가 대신 듣고 있다고

그렇게 전해줘야지. 태어나고 나서도 넌 정말 축복받은 아이라고, 사랑한다고 꼭 얘기해줘야지.

출산이라는 게 엄청 힘든 거라고 한다. 출산 후 아이를 바로 만나자마자 나는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정말 많은 말이 하고싶을 거고, 어쩌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말문이 막힐지도 모르겠다. 

난 청승맞은 편이다 보니, 어쩌면 지금까지 개들에게 해왔듯이 "아가, 엄마야~" 이럴지도 모르겠다.

주책없이 눈물만 펑펑 흘릴지도 모르겠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 하면 많기도 하지만 뭐 여튼

가장 먼저 "엄마가 사랑해." 라는 말을 꼭 해줄 수 있기를. 그게 내 아이에게 해주는 첫 마디이기를!


3. 

원주로 이사를 온 나는 원주로 산부인과를 옮겼다. 여기서 나는 좀 심란했는데..

구리에서 다니던 병원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는데 원주와서 병원을 알아보다보니 세상에 병원이 다 후졌었다.

구리에서 다니던 병원은 의사 선생님도 많고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면서 깨끗하고 크고 오래되어 믿음직했었는데

여긴 의사 선생님 수도 별로 없고, 병원 건물도 너무 허름하고, 심지어 몇개 없다보니 병원 한번 가기가 쉽지 않았다.

원주는 강원도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도시화 되어있다고 큰소리 떵떵 치던 나였는데, 병원에서 무릎꿇었다.

'아, 여기 시골이구나... 강원도는 원래 이런건가?' 사실 병원 시설이 뭐가 중요하고 크고 넓은게 뭐가 중요하냐 싶다.

으리으리한 병원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병원 화장실이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비위생적으로 느껴지고는 했다.

그건 아무래도 병원 탓만이 아니라, 아직 원주가 낯설고 괜히 마음 한구석에 구리에 대한 미련이 있는 내 문제이리라.

사실 맘 속으로 혼자 고민을 많이 했다. 구리는 병원도 맘에 들고 내 마음도 편안하고 친정도 가까이 있으니 구리에서 낳을까?

하는 생각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다만, 그럼 신랑과 멀어지게 되고, 몇주를 구리에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마땅치 않았다.

역시 신랑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에서 낳고 싶었다. 원주 내에서 진짜 많이 검색하고 알아보고 전화 상담을 한참을 했다.

그리고 하나의 병원을 정해서 방문했고, 뭐 그냥저냥.. 기대에 못미쳐서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어쩌겠냐 싶다.

의사 선생님이 믿음직해 보이니 된거지!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나. 병원 으리으리하면 뭐해, 믿음직한 선생님이 최고다.


4. 

그리고 이 병원을 선택했던 중요한 이유, 원주 산부인과 몇몇군데는 대부분 가족 분만이 가능한데

그 중에서도 르봐이예 분만이 가능하다는 홈페이지 글을 보고서는 그래 일단 이 병원으로 하자 싶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고 싶어서 조산원이나 자연주의 병원들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제법 비싼 출산비용에 좌절했었다.

그래서 일반 병원에서 출산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는데 일반 병원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출산할 수 있다니!

르봐이예 분만은 아이를 낳고 바로 탯줄을 자르고 입원하는 초스피드 방법이 아니라 출산 공간을 어둡게 하고

잔잔한 음악이 나오고, 출산 후에 아이는 엄마 가슴 위에 잠시 안겨 있을 수 있고, 탯줄을 아빠가 천천히 자르고,

아빠가 아이의 첫 목욕을 시켜주는 출산 방법인데, 이 병원에서는 목욕까지는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아보려고 노력하는 나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본다.


5. 

라준이도 이 방법을 마음에 들어하면 좋겠는데, 라준도 잘 도와줘야 한다.

병원 준비도, 우리 마음에 준비도 중요하지만 엄마가 순산할 수 있게 라준이가 좋은 모습으로 위치해줘야 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라준이가 역아이거나 너무 머리가 크거나.. 뭐..

자연분만을 하기 어려운 상태면 가족분만이고 르봐이예고 뭐고... 그치만 그거 역시 강요하고 싶진 않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라준이를 낳고 싶은데, 라준이는 다른 맘일 수도 있으니.

라준이가 가장 편한 자세로, 나오고 싶을 때에 나오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출산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저 최대한 라준이가 편할 수 있게 공간과 분위기를 준비해볼테니, 

라준이는 라준이가 가장 마음에 드는 날, 마음으 드는 순간에 머리를 쏙 내밀어주기를 바라본다.


6. 

산후조리원을 예약했다. 병원 고르기도 진짜 쉽지 않았지만 산후조리원도 말썽이었다.

다니게 된 병원에 같이 있는 산후조리원도 있었는데 내키지 않았다. 

그나마 원주에 깨끗한?(이 표현이 뭔가 이상하지만) 병원이 한 군데 있었는데

엄마들이 다 그리로만 가는지 12월 출산 예정인 산모는 마감했다고 안 받아준다더라. 

한 번 가려면 예약도 한달 전에나 해야 되고 뭐 이런.. 통화해봤는데 너무 무심한 태도도 싫었다.

뭐 여튼 산후조리원을 고르는데 있어서 몇가지 내가 생각하는 조건들이 있었다.

첫번째, 모자동실이 가능한가. 신생아든 몇개월이든 아이한테는 엄마의 품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신생아실이 가장 깨끗하고 가장 안전하겠지만, 엄마의 품, 엄마 냄새만큼 좋은 건 없을 것 같다.

어떤 산후조리원은 모자동실이 절대 안되서 수유하러 가서만 안아볼 수 있고 그렇기도 했다.

산모의 입원실에 신생아를 데려가면 세균 문제나 뭐 등등 걱정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럴만 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산후조리원은 신생아를 산모 입원실에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기저귀는 신생아실 데려와서 해야한다구.

네네 좋습니다. 저도 기저귀는 무서워용... 수유는 산모 입원실에서 할 수 있다고 하니 더욱 편할 것 같다.

아마 단점으로는 산모는 제대로 쉬기만 해야하는데 아이랑 같이 있으면 못 쉴 수도 있겠다는 거? 감내해야지!

두번째, 신랑의 출입이 자유로운가. 이건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되겠다 싶긴 했다.

출산을 막 마친 산모들이 있는 곳에 남자들이 출입하는 걸 싫어하는 산모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나는 산후조리는 신랑도 반드시 함께 해야한다고 본다. 산후조리하는 아내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야한다.

그래야 조리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어떤 산후조리원은 신랑도 아이를 신생아실 유리벽으로만 봐야하는 곳도 있었다. 그건 아니지!

아이한테는 엄마랑 아빠 냄새가 가장 중요한데 신랑은 왜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유리창으로만 봐야하는가..

내가 선택한 곳은 산모실에 신랑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식사도 미리 신청하면 신랑 식사도 나온다고 했다.

신랑이 있는 상태로 아이가 함께 있을 수도 있다. 이게 제일 좋았다. 다만 살균?을 제대로 하면 된다구. 좋아!

세번째, 저렴해야했다. 산후조리원 비용이 정말 만만치않았다. 병원에 같이 있는 산후조리원은 정말 엄청엄청 비쌌다.

2주에 240씩 하는 걸.. 2주에 겨우 2주에 200만원을 슝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산후조리원 들어가는 걸 고민했다.

아예 들어가지 말까 싶었다. 그런데 첫애고, 친정엄마도 없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겁이 났다.

그나마 내가 들어가기로 한 조리원은 저렴한 편이었다. 그래도 200 가까이 되는 금액이었지만..

산후조리가 잘 되어야 한다는 말, 안 그러면 나중에 고생한다는 그런 말들에 겁 먹어서

신랑에겐 미안하지만 결국 산후조리원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이왕 들어가기로 한거 들어가서 잘 쉬어야지.

겁나기도 하면서 기대도 되고, 얼른 우리 아가랑 같이 쉬고 싶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7. 

라준이의 태동은 20주 4일쯤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실 첫 태동은 16주 쯤이었다. 

그 때의 태동은 몽글몽글 콩콩콩 거리는 아주 미세한 느낌이었다. 뱃속에서 심장 소리가 느껴지는 듯했다.

아가가 있구나, 정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20주가 되서야 뽕뽕 배를 건드렸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두번 배를 뽕!뽕! 했다.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놀래서 자고있는 신랑에게 소리를 질렀다.

"오빠! 라준이 태동!" 신랑은 자다말고 깨서 "정말?! 라준아~ 라준이 움직였어? 엄마 나 잘있어요~ 했어?" 라며 좋아했다.

그 이후로도 라준이는 꾸준히 꼼지락댔다. 뽕뽕 아주 약하게 차던 느낌이 언젠가부턴 뻥뻥으로 바뀌었다.

하루에 다섯번 미만으로 느껴지던 라준이의 엄마 배 차기 횟수도 더 많이 느껴지고 있다. 

어떤 날은 뻥..뻐뻥.. 뻥뻥뻥.. 뻥.. 한 열댓번을 그렇게 차대기도 했다. 완전 신기하고 놀라웠는데 웃겼다. 

엄청 귀여워서 웃겼다. 근데 점점 배를 건드리는 세기가 세지는 느낌이라 그런지, 가끔 심하게 찰때는 억! 하기도 한다.

아이고 놀래라 하면서 억억 배를 부여잡고 있기도 한다. 뭐 아픈 정도는 아니고 불편한 정도? 그래도 참아야지.

뻥뻥 차지 않을 때에도 계속 꼼지락 꼼지락 거리고 있다. 뽀글뽀글 거리고 있다. 

신랑이 동화책을 읽어줬었을 때는 특히 더 꼼지락 꼼지락 뽀글뽀글 거렸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이었고 애벌레들이 나오는 내용이었는데 내용이 어찌나 깊은지...

이게 아이들 동화야? 싶을 정도로 내용이 깊고 숨겨져있는 내용이 너무 컸다. 

듣는 라준이는 애벌레가 귀여웠는지 어쨌을지 모르겠지만 같이 듣는 나는 진짜 너무 놀래서 오오... ㅋㅋㅋ

오빤 이 책을 어려서 읽었던 기억이 인상깊게 남아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동화책을 라준에게 들려줬다.

아빠가 뱃속 아가에게 책 읽어주는 건 정말 로맨틱하고 즐거운 일인 것 같다.

동화책을 읽는 내내 내 표정은 생글방글이었고, 오빤 읽으면서 배에 손을 계속 올려두고 라준이 뽀글거림을 느꼈다.

라준이 태어나고 나서도 자주 책 읽어주는 아빠이면 좋겠다. 그리고 라준이도 그걸 즐길 수 있기를.

나는 라준이랑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계속 말 걸고 있다. 

다림질을 하다가도, 똥 싸러 가다가도, 밥 하다가도, 설거지 하다가도...

"라준아~ 다림질을 왜하냐면 아빠 출근하실 때 예쁜 옷 입고 가시라고 하는거야~

아빠는 출근하시면 많은 사람을 만나셔야해서 예쁘게 옷 입으셔야해. 그래서 우리가 아빠 옷 다려드리는거야~"

"라준아~ 우리 똥 싸러 가자~ 라준아 밥이 맛있지요? 배부르지요?" 뭐 이런 식으로.

아참 신기한게 배고플 때보다, 밥 먹는 순간에 라준이가 더 꿈틀거리는 듯 하다.

특히 맛있는 거 먹을 때.. 엄마의 희노애락을 느끼기 시작한다던데 내가 행복해서 그런걸까.

내가 좋을 땐 라준이도 꿈틀 거리는데 라준이도 좋구나 싶어서 내 기분은 더 좋아지는 것 같다.


8. 

나는 지금 티비에서 드라마 천일의약속 마지막회를 또 재방송 해주길래... 또 보고 있다.

도대체 이 드라마를 몇번을 보는건지 모르겠다. 마지막회는 오열할 수 밖에 없다는 거 알면서도 틀어놓은 나도 바보다.

오늘의 끄적거림은 이만 종료. 너무 늦기 전에 잠들 수 있기를 바라며.. 

요즘도 아직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낮에 숨어다녀야 한다.

라준아 좋은 밤이다, 그렇지? 신랑도 좋은 밤이기를. 모두 잘자. 모두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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