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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들

28주 소란의 나날

1. 

오늘 드디어 미루고 미루다가 우체국에 다녀왔다. 스리랑카로부터 혜민언니에게 받은 편지, 아란이에게 꾸준히 받은 편지,

그리고 태현이가 군대에서 보낸 여러장의 편지까지... 사랑하는 내 친구들에게 답장 해야지 해야지 마음만 먹었었다.

사실, 우체국은 꽤 멀다. 걸어가면 멀고, 택시타면 가까운 그런 아주 거지같은 위치에 있다.

원주는 버스편이 너무너무너무너무 괴롭다. 한번 타려면 무척 오래 기다려야되는데다가 빙빙 돌아가기까지 한다.

구리는 뭘 타도 다 갔었는데, 제기랄. 택시 탈 돈도 없고, 걷기 운동에 좋으니 나는 열심히 걸었다. 두번째 가보니 쉬웠음.

우체국에 가서 스리랑카 혜민언니에게로, 구리에 아란이에게로, 전남에 군복무 중인 태현이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동네 유명한 검딩이랑 오랜만에 마주쳤다. 이녀석, 피하지도 않아. 따라오면 맛있는 거 줄건데ㅠㅠ

   

   

   



2. 

오빠가 주말에 쉬면 나는 너무너무 좋다. 평일에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하루종일 바쁘게 일하고 오다보니

집에오면 저녁 먹고 같이 티비 보다가 쓰러지는 오빠가 너무 안쓰럽고 미안했다.

나는 사실 하루종일 오빠가 오기를 기다린다. 내 유일한 사람.

그래서 오빠랑 더 놀고싶은데 일찍 잠들면 서운할 때도 있긴 했지만 이해해야한다.

하긴, 나도 일다닐 때 생각해보면 밤이면 픽픽 쓰러져 자고는 했었지 하면서.

오빠가 주말에 푹 잤으면 좋겠는데 이 사람은 이상하게도 아침 일찍 일어난다. 쿨럭...

아침 밥도 챙겨준다. 내 남자 짱짱맨. 우유에 시리얼을 타고, 햄이나 감자튀김, 계란까지! 최고최고 이셰프님!!



3. 

주말이면 오빠는 밤에 자는게 아깝다고 한다. 쓰러져가는 눈을 붙잡으며 겨우겨우 버티지만 결국 쓰러진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나는 그런 오빠를 몰카로 담아내고는 한다. 하하하하. 행복하구나.

아, 물론 오빠 핸드폰 사진첩에도 온통 내가 자고있는 사진들 뿐이다. 우린 서로의 자는 모습만 찍는 구나..

    



4.

그래도 이번 주말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같이 출산용품 정리를 했다.

물론 정리는 내가 했고, 오빠에게는 브리핑?ㅋㅋㅋㅋㅋㅋ 오빠는 "무섭다.. 무섭다.." 를 반복했다.

아빠가 된 다는게 무서운가 봄. 나도 엄마가 된다는 게 무서워 자기야. 다만, 어쩔 수 없잖아. 이젠 준비해야할 때가 되었어ㅠㅠ

인터넷 맘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취합하고 엑셀 자료를 만든 뒤, 결혼과 육아 선배인 지민과 효선쨩에게 부탁해서 정리했다.

내가 최초 정리한 엑셀 파일을 함께 봐주면서 이건 필요없고 저건 꼭 필요하고 등등의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두 사람에게 정말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고맙다는 얘기를 만날 때마다 해주고 싶다. 

나도 나중에 괜찮은 육아 선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꼼꼼히 다 기록해두고 싶다. 



5. 

며칠전에 간장게장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먹고싶었다. 사실 며칠전이라고 말하기 민망하다. 임신 후에 늘 먹고싶었다.

임산부에게 날것은 좀 위험한데다가 여름이라 날이 더우니 날 것은 더더욱 먹을 수 없었다.

드디어 날이 선선해지고... 간장게장과 초밥을 득템할 기회가 왔다!!! 간장게장을 시켜먹을 수 있게 해준 신랑에게 감사를ㅠㅠ

다음에는 직접 가서 먹어야겠다. 시켜 먹으니까 뭐 밑반찬도 안주고 하다못해 김도 안주더라!!!

정말 게장만 왔음. 어이가 없었지만 정말 맛있어서 참았음.

간장게장 보다 훨훨훨 맛있을 알배기꽃게장으로 시켰다. 2인분에 3만원이었는데 정말 딱 3마리 왔다. 졸라 비쌈.

그래도 요즘 남은 간장에 밥 비벼서 하루하루 연명 중. 너무 행복했다. 간장 게장 뜯는 내 모습 너무 아름다워.



6.

큰 반찬통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먹기엔 식탁이 좁다고 느꼈고, 꺼내놓고 먹으니 손도 안가는 듯 했다.

그래서 접시에 담았다. 그랬더니 예쁘기도 예쁘고, 그날그날 다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요건 감자탕에 우동사리 넣어서 먹은건데, 아 정말... 맛이 없었다. 



7.

어머님이 주신 갈비!! 내가 제대로 못 끓인건지 아니면 원래 고기가 저런건지, 생각보다 질겨서 고생했다.

하지만 너무너무 맛있었음.. 하악하악. 오뎅과 양파도 볶고, 버섯도 마늘에 볶아냈다.

예전에는 오뎅 양파를 볶는 것도 간 조절 못하고 맛 없고 짜고 이랬는데 그래도 요즘은 실력이 늘은건가 싶다.

제법 먹을만 한 수준이 아니라 너무 맛있음 ㅠㅠㅠㅠㅠ 멋져멋져 ㅠㅠㅠ



8.

어머님이 주셨던 닭의 유통기한 임박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닭 요리를 해야했다.

닭볶음탕을 했는데 성공!!! 여기서 조금만 더 칼칼하고 매콤했으면 좋았겠다 싶긴 했지만 내생에 최초 닭볶음탕인데..

이 정도면 진짜 맘에 들었다. 오빠도 잘했다고 칭찬해줬음. 헤헿. 요리하고 칭찬 받을 때 너무 행복하다...ㅋㅋㅋㅋㅋㅋㅋㅋ

감자랑 양파랑 닭으로만 만들었는데, 정말 맛있었음. 아!! 어머님이 주신 반찬 가지 장아찌도 보이네. 저거 존맛.



9.

어머님이 주신 닭을 겨우 해치우고 났더니, 그 며칠 뒤에 어머님께서 또 닭을 주셨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며칠 전에 닭볶음탕을 먹은지라, 또 탕요리를 하고싶진 않고, 뭘 해야하나 (역시나 유통기한 임박!!!)

그래서 치킨에 도전했다. 튀김가루 보다 빵가루로하면 더 바삭바삭하다는 얘기에 빵가루로 도전!! 

얼어있는 닭을 물에 헹궈 녹이고 부러뜨려서 분리하고(이 작업이 정말 짜증난다. 뭐가 이렇게 안 부서지는지...)

닭을 우유에 넣어서 잡내를 30분간 빼줬다. 그 동안 밑간을 해야하니 작업을 챱챱... 할 게 많다!

나는 양파, 마늘, 파를 갈고 무알콜 맥주를 같이 섞은 뒤에 거기 닭을 1시간 정도 넣어놨었다.

맥주 향이 들어가면 닭이 맛있다고 하길래 해봤는데 무용지물... 아무 느낌 없었음..

뭐 하여튼 이상한 초록색의 밑간 양념에 1시간 정도 재운 닭을 꺼내서 밀가루 묻히고 찬물에 잠시 넣는다.

찬물에 넣으면 닭이 더 바삭바삭해진대서 했는데 뭐 잘 모르겠다... 그 후에 빵가루 챱챱 묻혀서 기름에 풍덩.

치킨만 먹으면 재미없으니까 양파튀김이랑 감자튀김을 했다. 감자를 오래 튀겼더니 정말 바삭바삭 아삭아삭!!!

양파도 썰어서 아까 닭 재웠던 밑간 양념을 묻히고 밀가루, 계란, 빵가루 순서로 해서 기름에 전부 풍덩!!

와 진짜 너무너무 맛있었긴한데 더럽게 힘들었다. 튀김 요리는 집에서 하는 게 아니야. 닭은 사먹는게 이롭다.

사먹는게 훨씬 수고도 덜하고 맛있다. 앞으로는 사먹어야지. 한동안 닭 요리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고생하며 일하고 퇴근한 오빠에게 치킨과 소맥을 선사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헤헿.



10.

내가 친구를 참 잘뒀다. 그냥 일상적으로 아란이랑 카톡을 하며 밥 하기 귀찮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중에 뭐가 먹고싶느냐고 외식브랜드 이름들이 적힌 목록을 보내길래 피자! 했더니 그러고 1시간 뒤에 기프티콘이 날라옴..

뭐야 무슨 날인가? 싶었는데 아무 날도 아니었음. 그냥 정말 아란이의 선물이었다. 뜬금없이 받는 선물이라 기쁘고..

그게 피자라서 더 기뻤다..ㅠㅠ 진짜 밥 하기 싫은 늘어지는 날이었는데 미친듯 맛있게 먹었다. 다먹었음.

그러고 나중에서야 도착한 아란이 편지 내용에 보니, 기프티콘 선물을 가끔 해주고싶다는 내용이 있었다.ㅋㅋㅋㅋ

선 선물, 후 설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내가 친구를 잘 뒀구나 싶어서 고마움에 눈물까지 날 뻔했음.

기프티콘 보내려고 와이파이 터지는 곳 찾아서 헤매다가 학생실인가 뭔가까지 들어가서 했다는 아란이ㅋㅋㅋ 짱 귀엽!!



11. 

며칠전에 지민가족과 효선쨩이 원주 집에 놀러왔었다. 신랑 출장이 원주라서 따라나선 지민과 담인이. 

그리고 같은 날 일하다말고 이천에서 날아와준 효선쨩 까지. 정말 간만에 내 사람들이 놀러오니 어찌나 신이 나던지.

진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 떨고 놀았다. 육아 선배들이자 좋은 언니들, 좋은 사람들, 좋은 칭구들! 너무 행복했다.

산후조리에 대한 조언도 듣고, 유부녀들의 걸스토크도 하고, 간만에 집에 바글바글!

지민 아들 담인이는 돌 지난지 얼마 안되었는데 진짜 너무너무 예뻐졌다. 어느새 그리 커버린건지 기어다니는데 짱 빠름.

담인이는 성격도 참 좋은 것 같다. 못생긴 이모인 나에게도 잘 와주고 잘 웃어주고, 상냥해ㅠㅠ♥

담인이가 다녀간 뒤 나는 완전 담인앓이중이다. 우리 라준이도 나중에 태어나면 담인이처럼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

담인이랑 셀카도 찍었는데 (블로그 보는 사람은 없지만서도) 담인이에게 올려도 되는지 물어보지 못했기에 안 올리기로..ㅋㅋㅋ

담인이가 좀 커서 대화가 된다면 그때 물어보고 올려야겠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헤헿 담인이 담인이 꺄아ㅠㅠ

   

   



12.

이제는 28주에 들어가는데 (저 사진들은 26주, 27주 쯤?) 나는 임산부치고 배가 별로 많이 나오는 편은 아닌가보다.

남들에 비하면 별로 많이 안나왔음. 라준이는 잘 크고 있는건가 걱정이 되긴 하는데 병원 가면 잘 크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배가 예전에 비하면 제법 나와서 이제는 옷 입기가 정말 불편하다. 가슴이 커져서 살끼리 닿는것도 기분이 별로ㅠㅠ

배가 무거워져서 몸을 움직이는 게 무겁고 힘들어졌다. 외출 할 때 입는 옷도 제한되었다. 불편하다보니...



13. 

오빠 퇴근 시간에 맞춰서 이마트에서 만나기로 하고 외출을 했다. 뭐 데이트 하듯 나간 건 아니지만서도 외출은 늘 신난다.

집순이가 집을 탈출하면서 간만에 셀카도 찍어봤다. (임신 후에는 정말 셀카도 별로 안찍은 듯... 거울 속 내 모습이 싫다ㅠㅠ)

옛말에 아들가지면 임산부가 못생겨지고, 딸 가지면 얼굴이 핀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진짜 맞는 것 같다.

요즘의 나는 갈수록 못생겨지고 있다. (원래는 예뻤는데.. 라는 말이 아니라.. 갈수록 더더더!!! ㅠㅠ)

우리 이모도 아들 셋 가진 동안 얼굴이 별로였다가 막내 딸 가졌을 때는 얼굴이 피더라고 하시고,

다른 육아 선배들 얘기 들어보면 진짜 맞는 말인 것 같다. 뱃속에 아들 호르몬이 있으니 일리 있는 말인 듯?

   

   

   



14. 

나는 타고난 잠탱이라 12시가 되어서야 겨우 침대에서 나온다. 오빠는 12시 점심시간 쯤이 되면 전화를 준다.

혹은 일어났느냐고 카톡을 보내주는데, 일어는 났지만 침대 밖으로 나가기 싫다는 의미를 담아서 사진을 보내줬다.

그러면 얼른 일어나서 아점 챙겨먹으라는데, 요즘은 아점도 별로 안 땡긴다. 식욕이 없나 싶음.

그냥 일어나기 귀찮은 것 같다. 침대와 한 몸. 아기 낳기 전에 많이 자두라는 주변 육아선배들 말을 잘 실천 중이다.

임신이 아니어도 너무 잠이 많아서 문제지만 이럴 때 푹 자는거지!! 라며 합리화 중ㅋㅋㅋㅋㅋㅋㅋㅋㅋ

   



15. 

신랑 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화질이 구려서 내 잡티와 나쁜 피부가 잘 안보여서 너무너무 좋다. 

예전에는 오빠 폰으로 사진도 많이 찍고는 했었는데, 요즘은 아주 가끔 가끔 찍고는 한다.

오빠 카톡 프사는 내가 엽기 표정을 짓고 있는데, 오빠가 좀 바꿔줬음 좋겠다.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자기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예쁜거 해줘ㅠㅠㅠㅠㅠ

   



16. 

라준이는 28주에 들어간다. 요즘은 태동도 자주 있고, 옆구리에서까지 느껴지다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조산기가 생기지 않게 조심해야지 싶고, 몸이 확실히 무거워지니까 움직이는 것도 조심하게 된다.

28주라, 진짜 출산이 10주 정도밖에 안남았다. 라준이 예정일은 12월 16일인데, 12월 초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음ㅋㅋㅋ

물론 네 맘대로니까 네가 나오고 싶을 때 편하게 나오라고 늘 얘기해주긴 한다.

다만 12월 이전은 너무 이르니까 안된다고 조금 더 있자고 얘기하고는 한다.

오빠도 자기전에 늘 배를 쓰다듬으며 "라준아 12월에 만나자~" 해준다. 태담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막 우는데 (보통 태어나면서 우니까) 간호사가 남편한테 "아빠, 애기 태명 있으면 불러봐주세요."

라고 해서 그 남편이 태명을 부르니까 애기가 울음을 그치면서 어디서 소리가 들리는 건지 찾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태담이 중요하다고 한다. 애기가 목소리를 기억하니까. 나는 혼잣말로 자주 대화를 나눈다.

라준아 오늘은 날씨가 좋다, 그치? 라준아 나무가 무척 크다, 그치? 아마 녀석도 뱃속에서 대답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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